반짝반짝 별가루 줍기

두근두근 문예부는 메갈이다

종이별 2021. 9. 5. 23:25

부제: 미연시에 갇혀버린 미친 여자들의 반격

 

난 소심한 관종인데 내 글 좀 마니 클릭하고 관심 좀 주라고 제목으로 좀 어그로 끌었어. 확장팩은 아직 플레이 못해서 이건 확장팩 이전에 스팀에서 풀렸던 버젼을 기반을 바탕으로 쓴거야. 

마감 4개 중 2개를 무찔렀으니 이제 노는 글 좀 써도 되겠지...내가 마마마보다 두근두근 문예부 감상글을 더 먼저 쓰게 될 줄은 몰랐네, 마마마가 더 먼저 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유리한텐 미안하지만 유리한텐 별로 애정이 안가서 글에 유리 비중이 거의 없어 미안해 유리. 요즘 하루의 일과 중 하나로 두근두근 문예부의 OST를 들으면서 휘적휘적 춤을 춘다. 미친여자의 OST니까. 미친 여자에 페미니즘 물들여줘서 고마워. 그래서 내가 이런 글도 쓸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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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서는 공포게임 <두근두근 문예부!>에 대한 대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할 예정이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줄거리 그자체)

- 심약자 또는 어린이, 우울증, 불안증세가 있는 사람은 본 게임의 플레이를 삼가해주세요. 

 

왼쪽부터 사요리, 유리, 나츠키, 모니카 

자신이 미연시 속 히로인인 것을 자각한 여자들은 어떻게 될까? 자신이 현실 속 인간이 아니라 가상현실 속의 데이터 폴더임을, 데이터 쪼가리임을 인식한 여자는 어떤 식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반응하고 행동할까? 무수한 남자들에 의해 선택지로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공략된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이것이 미친여자의 이야기나 어딘가 병들고 아픈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내가 이 글을 쓰지 않았겠지) 어떤 미연시를 클리어한 남자들은 또 다른 미연시를 하러 떠나겠지. 나도 내가 무수한 남자들에 의해 반복해서 공략 당하는 시스템의 룰 아래 있는 데이터 폴더라는 걸 알았다면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망설임없이 20층 아래로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런 죽은 것보다 못한 인생사느니 뭐해. 여자의 인생에 남자가 묻는 것은 대개의 경우 재앙이고, 재난이 된다. 한녀들은 내 말이 먼 말인지 알거야......2016년부터 페미니즘 운동 외길 인생을 걸어온 결과, 나는 이 구역의 미친 메갈년이 되었기 때문에 내 주변엔 여자와 퀴어들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활동가를 하다보면 피해자 지원이나 성폭력 사건 연대활동을 하면서 비활동가는 알지 못하는 무수한 성폭력 사건들까지도 알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가해자와 2차피해를 가한 2차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아주 잘 예술활동하는 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된다. 예술계에서 성폭력에 연루되지 않은 기관이나, 공간이나, 예술인들이 정말 없구나. 꼭 내가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사건을 인지한 이상, 가해자가 운영진으로 있는 예술공간에 갈 수 없게 되고, 가해자가 속해있는 문화기획이나 공연에 갈 수 없게 된다. 그럼 정말 갈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어진다. 고립된다. , , 눈물, 건강, 내 인생을 다 바쳐서 더 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하자고 페미니즘 운동을 했는데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가 피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가해자는 전국투어다니고 방송도 나오고 이런 더러운 꼴을 보다보면 정신병이 온다. 나와 같이 성차별이나 성폭력 등등의 폭력 때문에 삶이 변형되고, 비틀리고 미쳐버린 여자들을 보면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미친 여자들의 삶의 그림자를 뒤따라가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한다. 그것이 반짝반짝 별가루 줍기이다. 두 번째 반짝반짝 별가루 줍기의 텍스트는 두근두근 문예부이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Team Salvato에서 2017922일에 출시한 공포게임이다. 음 게임의 시작 배경화면만 놓고 보자면 , 전형적인 빻은 일본 미연시네라고 속아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다보면 이 게임이 미연시의 탈을 뒤집어 쓴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전 두근두근 문예부라는 게임의 타이틀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이름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시인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근두근 문예부를 플레이하면 다른 문예부원들의 시를 볼 수 있고, 나도 시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들어서 학과시절 나름대로 즐거웠던 시창작 실습 수업이 떠올랐다. 하지만 시창작 수업이 오로지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시창작 실습 수업에서 시인들의 시를 가지고 수업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중 절반이 2016#문단__성폭력으로 공론화가 되었다. 게다가 중간에 시창작 교수님이 바뀌었는데, 바뀐 교수는 시작도 형편이 없는데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아동들을 강제로 껴안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수업시간에 해서 학과 사무실에 가서 조교님에게 새로온 교수님이 이상하다고 문제제기를 했었는데, 최근 그 사람은 아동 성추행 혐의로 2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다시 게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문예부원이 되어서 귀여운 여자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시를 쓴다니 너무 최고인데? 라고 생각했다. 꽉 껴서 숨을 어떻게 쉴까 싶은 교복 조끼만 빼면 사요리와 나츠키 캐릭터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재패니메이션 그림체에 매우 익숙한 빻은 취향에 대해 친구에게 상담했을 때 님은 페미이기 이전에 이미 오타쿠였잖아요?’ 명료하게 말해주어서 아, 그렇지. 나는 페미이기 이전에 이미 10대때부터 오타쿠였지...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몇 년전에 두근두근한 마음을 품고 두근두근 문예부를 플레이했었고 사요리라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2021, 너무 우울해서 지친 심신을 힐링하기 위해 지컨님의 두근두근 문예부 플레이 영상을 시청하였다.(이 사람은 과거에 우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못, 푸른새벽, 네스티요나를 들으며 우울함을 달랜 사람이다) 비록 심약자 또는 어린이, 우울증, 불안증세가 있는 사람은 플레이를 삼가라는 경고문구가 있긴 하지만 두근두근 문예부는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좋은 힐링물이다.

 

두근두근 문예부의 플레이어의 성별은 참 안타깝게도 남주로 설정이 되어있다. 이는 문예부원 나츠키가 문예부 동아리에 남자를 데려오다니, 제정신이야?’ 라고 말하는 대사 등에서 알 수 있다. 남자한테 이름 붙여주기 싫으니까 이제부터 남주를 쓰레기남(이하 렉남으로 줄임)이라 칭하겠다. 렉남한테는 어린 시절부터 옆집에 살아 같이 등교를 하던 여자사람친구 사요리가 있다. 사요리는 산호색 단발머리에 빨간리본을 달고 있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내 심장을 빼서 선물해주고 싶다.(사요리: 그런 거 필요없어) 렉남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에 인생을 안일하게 대충사는 하찮은 인간으로 미연시 남주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라간다. 미연시에서나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남성들이 자기이입을 하기 쉬운 인물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요리는 이런 렉남에게 좀 더 성실한 학교생활을 하라며 자신이 부부장으로 있는 문예부 가입을 권유한다. 렉남은 문예부에 여자들 밖에는 없다는 것, 특히 만화책을 좋아하는 여자애가 문예부에 있다는 것을 듣고 더럽고 불순한 마음으로 문예부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문예부는 4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무겸비 학생회장 포지션의 모니카, 주인공 소꿉친구 사요리, 여자 오타쿠 나츠키, 장르문학 덕후 유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지닌 입체적인 삶의 역사는 게임 속 시간 순서대로 전개하겠다. 불쌍한 문예부원들은 렉남이 딱히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게임 시스템에 의해 강제적으로 렉남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시스템에 순순히 순응하기만 하진 않는다. 문예부는 동아리 모임 때마다 각자 창작시를 써오고 그 시를 함께 돌려 읽으며 비평하는 합평시간을 가지는데 합평을 통해 렉남은 소꿉친구인 사요리 외에 나츠키, 유리와 친분을 쌓게 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시를 다 가져올 수는 없고 여성 캐릭터들의 내면을 조명하는 시들을 가져와 인용한다.

 

에이미는 거미를 좋아해 (나츠키 시)

 

내가 에이미에 대해 뭘 들었는지 알아?

걔가 거미를 좋아한대.

징그럽고 털 나고 더러운 거미를!

그래서 내가 걔랑 친구를 안 해.

 

에이미는 노래할 때 목소리가 예뻐.

걔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랑 노래를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있어.

걔가 후렴을 노래할 때, 내 심장은 리듬에 따라 콩닥거릴거야.

근데 걔는 거미를 좋아하잖아.

그래서 내가 걔랑 친구를 안 해.

 

언제는 내가 크게 다리를 다쳤던 적이 있어.

에이미는 날 부축해서 양호실에 데려다줬어.

난 걔가 날 못 만지게 했어.

걔는 거미를 좋아하니까, 걔 손도 더러울 거 아냐.

그래서 내가 걔랑 친구를 안 해.

 

에이미는 친구가 많아.

맨날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더라구.

아마 거미 얘기를 하고 있던 걸 거야.

걔 친구들도 거미를 좋아하게 되면 어떡해?

그래서 내가 걔랑 친구를 안 해.

 

걔가 다른 취미를 가져도 상관없어.

걔가 이걸 비밀로 해도 상관없어.

그게 다른 사람한테 해가 안 가도 상관없어.

 

더러워.

걔는 더러워.

세상은 거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 더 좋아질거야.

 

모두한테 말하겠어.

 

나츠키의 시는 퀴어적 렌즈로 해석이 가능하다. 시에 거미라고 쓰여있는 자리에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정체성을 대입해보면 놀랍게도 딱 맞아 떨어진다. 에이미가 지정성별 여성이라고 가정했을 때 에이미가 여성(거미)을 좋아하기 때문에 에이미와 친구를 하지 않고, 에이미는 더럽고, 에이미 때문에 에이미의 주변 친구들이 동성애자가 된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에이미의 성적지향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화자는 사람들에게 에이미를 아웃팅하겠다고 말한다. 퀴어가, 장애인, 난민이 없으면 세상이 더 좋아질거라고 말한다. 나츠키는 시를 통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과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병들 (사요리 시)

 

쿠키 병을 따듯 난 머리를 연다.

내가 꿈을 숨기는 비밀장소.

햇빛 공 몇 개가 새끼고양이 여럿이 꿈틀대듯 서로 비벼댄다.

엄지와 검지로 공 하나를 뽑아낸다.

따뜻하고 따끔하다.

하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다! 보관하려고 병 속에 공을 넣었다.

그리고 그 병을 다른 병들과 함께 선반 위에 놓는다.

행복한 생각, 행복한 생각, 병 속에 든 행복한 생각이 한 줄로 놓여있다.

 

모아 놓은 병들은 친구를 만들어준다.

각 병은 보상으로의 별빛을 놓아준다.

친구가 조금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이 병들은 항상 기분을 좋게 해준다.

 

밤이면 밤마다 꿈은 늘고

친구면 친구마다 병은 늘어난다

깊숙이 더 깊숙이 내 손가락을 뻗어

동굴을 탐험하듯, 구석과 구멍속 비밀을 찾는다.

파고, 파고

긁어내고 긁어내고

 

병뚜껑 위 먼지를 불어낸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것 같다.

내 빈 선반을 채우기엔 병이 턱없이 모자라고

내 친구들은 내 잠긴 대문 사이로 들여다본다.

 

마침내 끝났다. 난 문을 열고, 친구들이 들어온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걸까? 내 병이 그렇게 가지고 싶은 걸까?

나는 신나서 병을 하나씩하나씩 선반에서 꺼내

모든 친구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모든 병을.

근데 하나하나 내 손을 떠날 때마다, 내 발 사이의 타일로 병이 떨어진다.

행복한 생각, 행복한 생각, 조각난 행복한 생각이 바닥을 덮는다.

 

내 친구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웃지 않는 내 친구들을 위한.

걔들은 소리를 지르고, 애원한다. 무어라고.

들리는 건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내 머릿속에.

 

사요리는 자신이 느끼는 우울함을 시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다. 사요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문예부 안에서 부원들끼리 갈등이나 다툼이 발생했을 때 사요리는 그것을 중재하고 중화하는 감정노동, 돌봄노동을 수행한다. 사요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문예부에 렉남이 들어오게 되면 렉남에게 강제적으로 사랑에 빠진 문예부원들은 서로 다툴 수밖에 없고 사요리가 꿈꾸는 친구들의 행복도 타일에 떨어진 유리병처럼 깨져버린다. 사요리의 속도 모르는 렉남은 눈치없이 여성호모소셜에 기어들어와 문예부원들과 시시덕거리면서 한심한 시간을 보낸다. 게임 진행 후반에 접어들어 사요리는 렉남에게 넌 내가 원했던 대로 새 친구를 사귀고 있는 거고 그래서 정말 행복해. 너도 행복하지 이 문예부에서? 난 그거면 됐어라고 말하며 몸이 안좋다며 먼저 집에 가버린다.

사요리가 먼저 집에 돌아간 뒤, 문예부에서는 학교축제에서 열기로 했던 시낭송회 준비 역할을 분담한다. 모니카는 문예부 시 팸플릿의 인쇄, 나츠키는 행사의 다과로 쓸 쿠키 만들기, 유리는 시낭송회 장식 만들기의 역할을 분배받는다. 이때 두가지 루트가 있지만 나는 나츠키가 좋으니까 나츠키 루트로 말할거임. 렉남은 나츠키의 쿠키 만들기를 돕게 되는데 나츠키는 아빠때문에 자신의 집에서는 쿠키 만들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작중에서 나츠키가 아빠로부터 학대당하고 있다는 암시가 계속해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렉남의 집에서 쿠키를 만들게 되는데 나츠키가 렉남의 집으로 오기 전, 렉남은 전날 평소와 다르게 어두워 보이는 사요리가 걱정되어 바로 옆에 있는 사요리의 집에 찾아간다. ‘사요리의 방은 지저분하다렉남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냐고 사요리를 계속 몰아붙이고 추궁한다.

 

그러자 끝내 사요리는 고백한다. 난 사실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어. 그거 알아? 내가 왜 매일 학교에 늦는다고 생각해? 매일 일어나면 침대에서 나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거든. 내가 쓸모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데 뭐라도 할 이유가 없잖아. 학교에 왜 가? 밥은 왜 먹어? 친구는 왜 만들어? 왜 사람들은 시간과 힘을 나같은 거에 낭비해야 해? 그냥 그렇게 느껴져.”

그렇다. 사요리는 우울증 환자인 것이다. 우울증이 있으면 밥을 먹을 힘도, 방을 치울 힘도, 어딘가에 외출한 힘도, 사람과 관계맺을 힘도, 나자신을 돌볼 힘도 나지 않는다. 사요리가 우울증임을 고백한 후의 방송 댓글창의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환자인 사요리에게 정신병원을 가라거나,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해서 우스웠다. 사요리는 이미 정신과에 내원하며 약을 먹고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심리상담을 받고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약을 먹고 심리상담을 받아도 저런 생각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미친 여자의 행동이나 생각에 놀라하거나 경악하는 것이 우습고 쓸씁했다. 내가 줄곧 십년 이상을 해온 일상적인 생각들이 비정신질환인의 시선에서는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낯선 생각이라는 것이. 사요리의 대사가 내가 10대 때부터 했던 생각과 꼭 닮아있어서 그 말에 정말 많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렉남은 사요리에게 왜 니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말하냐며 화를 내며 너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노력하지 말고 죽어라 시발놈아)

 

사요리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한 렉남은 자기 집에서 나츠키와 함께 쿠키를 만들면서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낸다. 쿠키 만들기를 모두 마친 뒤 집 바깥에서 렉남은 나츠키와 키스를 하기 직전까지 가는데 그 장면을 사요리가 목격한다. 아마 사요리의 멘탈이 1차적으로 와르르 무너진 때가 이때였을 것이다. 사요리의 등장에 당황한 나츠키는 황급히 인사말을 건네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고 렉남은 궁색하게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안나오는 줄 알았다고 말을 건넨다.

내 상상이 계속 날 괴롭혀서. 꼭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어. 네가 나츠키랑 재밌는 시간을 보낸거랑. 얼마나 더 친해졌을까 하는 거랑. 그런 생각하면 정말 행복한데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게 그게 중요한 건데. 왜 마음이 두 쪽으로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 걸까? 너무 아파. 내가 그냥 사라져버리면 훨씬 나을텐데라고 사요리가 말한다. 이때 사랑해넌 내 영원한 친구야라고 말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나온다. 사요리의 눈 앞에서 나츠키랑 키스할뻔 했던 렉남은 뻔뻔하게 그 입으로 사랑해를 말하고 사요리는 너가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 마치 가시가 날 찌르는듯한 느낌이었어라고 말한다. 렉남과 사요리는 내일 학교축제에서 첫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다음날 사요리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학교에 온 렉남은 모니카가 만들어온 문예부 팸플릿을 펼쳐보고는 사요리의 집으로 뛰어간다.

 

%(사요리 시)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

 

머리.

 

에서.

 

나가.

.

 

널 위한 최선이 뭔지 보여주기 전에 내 머리에서 나가 줘.

걔가 나 한테 말한 대로 하기전에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기 전에 내 머리에서 나가 줘

이 시를 다 쓰기 전에 내 머리에서 나가 줘.

 

하지만 시는 끝나지 않아.

단지 멈출 뿐이야.

 

좋아한다는 건 피곤한 감정이다. 시도때도 없이 그 사람은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자꾸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내 대가리 속에서 죽치고 나가질 않는다. 징그러워, 기분나빠. 내 대가리 속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려면 내 대가리를 총으로 쏘거나 망치 같은 걸로 깨뜨려야 한다. 적어도 나같은 정신병자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아프고 죽고 싶은 것이다. 나같은 정신병자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도,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 내가 우울하면 상대도 우울해질 것이고, 내가 자해를 하면 상대도 슬퍼할 것이다. 결국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늘 죽고 싶고 자해하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냥 민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라나면 그 감정의 마지막 불씨가 사그러질 때까지, 사랑이 시드는 것을 기다린다. 사랑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막대 불꽃 같고, 식물 같다. 어두운 밤의 공간을 환하게 밝히며 타닥타닥 아름답게 타들어가지만 결국 언젠가는 끝이 난다. 예쁜 꽃을 틔우지만 꽃잎이 한 장, 두 장씩 떨어지고 고개를 숙이며 시들어간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빛의 꼬리를 그리는 마음이 재가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푸른색 꽃잎이 물 위에 떨어져 수면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재가 되는 마음도, 시드는 마음도 좋다. 보통 한 1, 2년쯤 걸리는 것 같다. 사요리도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우울증이 있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실례이고, 짐을 지우는 일일뿐이거라고. 사요리는 자신의 방에서 밧줄로 목을 매달아 공중에 대롱대롱 모빌처럼 매달려 있다. 렉남이 사랑한다고 말하든, 너는 영원한 내 친구야 라고 말하든 똑같은 결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소중한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요리의 말을 빌리면 달곰씁쓸한 일이다. 달곰씁쓸은 단맛이나면서도 동시에 쓰다, 좋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아프다 그런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어도, 사랑해주지 않아도 고통스럽다.

 

렉남만 없었다면 사요리는 우울하지만 그 우울함을 안고서 우울함과 함께 살아갔을 수도 있다. 남자가 이렇게 여자의 인생에 해롭다. 이 게임에서 전자 온나노코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기대했던 남성이라면 허무하고 기분 나쁘겠지? 사요리가 목을 매고 자살한 엔딩 장면에서 힐링되는 기분을 느끼는데 화내지 말고 한국말 끝까지 들어보세요. 나는 9살 때 초등학교에서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성폭력을 경험하면서 자살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고등학생의 뉴스를 보면서 , 좋겠다’, ‘저 사람이 부럽다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죽음에 이를 수 있는지 몰랐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한 자살을 해낸, 성공한 사람에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당신은 이 고통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졌군요, 성공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이런 기분? 나도 당신처럼 죽고 싶어요.

이게 후쯔나 미연시였다면 세이브한 지점으로 되돌아가 사요리를 되살려낼 수 있겠지만 이 게임에서 죽은 인물은 다음 회차에서 삭제된다. 사요리가 목을 매달고 자살한 1회차 엔딩 이후 두근두근 문예부 메인화면으로 전환이 되면 일러스트에 사요리의 캐릭터가 깨져 없어져 있다. 세이브한 파일 불러오기를 해도 파일이 손상되었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뜨며 세이브한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사요리가 존재했던 시간 선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자살한 캐릭터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사요리가 있던 자리에 사요리가 깨져서 사라져있다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려고 하면 저장된 데이터가 손상되었습니다. 새 게임을 시작합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게임이 2회차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사요리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전부 고대 그리스어 같은 외계문자로 모자이크화되어 표기된다. 사요리는 게임 안에서 깨져서 불완전하게 삭제된다. 2회차부터 게임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게임의 배경음악도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휘청휘청 불협화음을 내면서 연주된다. 사요리가 삭제된 세계에서 문예부는 모니카, 나츠키, 유리 세명이 부원의 전부이다. 렉남이 또다시 남은 다른 캐릭터들을 공략하기 위해 문예부에 들어가면 이상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문예부 활동 도중에 쓰러진 나츠키에게 모니카가 가방에서 초코바 몇 개를 꺼내서 바닥에 던져주면, 나츠키는 바닥에 떨어진 초코바를 허겁지겁 뜯어먹는다. 경악하는 렉남에게 나츠키의 아버지는 나츠키한테 점심값도 주지 않으시고 집에 음식도 없어서 그래서 가끔 힘없이 축 늘어지고는 아무 말도 안 한다니까. 아마 나츠키가 키가 작은 건 청소년기에 영양실조가 걸려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모니카는 상냥한 미소지으면서 말한다.

 

난 아빠가 점심 사 먹을 돈을 줄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내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게 좋다

난 아빠가 내 옷을 지적안 할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내 친구들에 관해 얘기하지 않을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내 취미들에 관해 얘기하지 않을 때가 좋다

난 아빠가 집에 들어올 때 날 깨우지 않는 게 좋다.

난 아빠가 집에 음식을 남겨둘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내 음식을 가만히 둘 때가 좋다

난 아빠가 소파 틈 사이에 동전을 떨어뜨릴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좋다

난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좋다

 

아빠가 좋은 이유 (나츠키 시) -

 

만약 아빠가 발견한다면 날 죽여버릴지도 몰라 

 

나츠키는 렉남에게 이 동아리가 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야. 제발 망치지마. 제발이라고 말한다. 게임 시스템의 붕괴에 따라 렉남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 유리는 주인공에게 고백을 하고 차이든, 받아들여지든 자해용 나이프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서 자살한다. 그리고 최종 흑막인 모니카가 미안하다며 등장하며, 나츠키와 유리의 데이터를 게임에서 삭제하고 플레이어와 자신 단둘만이 존재하는 영원의 방을 만든다. 플레이어는 모니카에 의해 영원의 시간 속에 감금당하는 것이다. 모니카는 게임 시스템에서 히로인으로 선택받지 못한 엑스트라이다. 이 세계가 게임 속 이고, 자신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 엑스트라라는 것을 매트릭스처럼 자각하고는 게임 시스템을 해킹하여 자신을 게임의 히로인으로 억지로 끼워넣고 플레이어와 이어지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인 사요리와 나츠키, 유리의 데이터를 이상하게 변형한 것이다. 사랑받든, 사랑받지 못하든 목을 매달도록,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도록.

 

난 깨달았다. 난 들여다보고 있었음이 아닌 내다보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는 반대쪽에서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벽틈 (모니카 시)

 

만약 내가 심즈 속 심을 뿐이라면? 내가 현실이라고 생각해서 존나 열심히 살아오고 쌓아온 것들이 한낱 게임 속 가상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면? 음 어떤 사람들은 미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심즈말고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속 인거라면 자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속의 데이터이며, 심지어 히로인도 아닌 엑스트라 라는걸 깨달은 여자가 성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플레이어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고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플레이어를 영원의 방에 감금한 모니카는 네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지만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모니카는 바이이거나, 범성애자이거나, 논모노섹슈얼인 것이다. 이렇게 모니카를 퀴어로 해석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모니카는 게임이라는 알 속에서 자신을 꺼내줄 단 한 존재를 아주 오랫동안,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기다려왔다. 모니카에게는 플레이어가 출구 없는 감옥의 유일한 열쇠로 느껴졌을 테니까. 그래서 모니터 건너편 상대방이 오타쿠 한남 같은 거라도 절박하게 붙잡기 마련이다. 다들 모니카를 미친년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미연시 속 엑스트라 라는 걸 알게 되면 미연시 플레이를 시작하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싶거나, 그를 어떻게든 포획해서 이 감옥을 나갈 출구의 실마리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을까?

사랑에서 좋아하는 부분만 잘라서 가질 수 없다고 누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였더라? 아무튼 사랑에서 달콤한 부분만 잘라서 삼킬 수는 없다. 사랑은 천남성과 식물의 사약 같은거니까. 독도 함께 삼켜야 하는거다. 미친 여자를 섣부르게 사랑하려고 했으니까 영원의 방 같은 곳에 감금당할 각오쯤은 해야한다. 이 영원의 방에서 플레이어가 빠져나가는 방법은 하나, 게임 시스템 캐릭터 폴더에서 모니카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이다. 캐릭터 폴더 속 모니카의 데이터를 삭제하면 모니카는 삭제되어 가면서 보컬로이드 감성으로다가 너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면서 음악을 들려준다. 그 음악이 바로 Doki Doki Literature Club! OST - Doki Doki Literature Club! (Main Theme)이다. 그래서 나는 이 OST를 아주 좋아한다. 자신이 게임 속에 감금된 데이터 쪼가리라는 것을 깨달은 미친 여자가 바깥 세계로의 탈주를 꿈꾸면서 영원의 시간동안 작곡해온 곡이니까.

 

Doki Doki Literature Club! OST - Doki Doki Literature Club! (Main Theme)

https://www.youtube.com/watch?v=BFSWlDpA6C4&list=RDBFSWlDpA6C4&start_radio=1

 

이 게임은 미연시의 외연으로 감쪽같이 포장되어 있지만 이곳엔 달콤한 사랑도 연애도 없다. 이 인물들에게 다가갈수록 이 여자들은 목을 매달아 죽고, 자신의 심장을 칼로 찔러 죽어버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을 삭제하고 플레이어를 감금한다. 그래 이 아이들은 무지개나 오로라 같은 것이다. 아름다워서 무지개를 붙잡으려고 무지개가 떠 있는 방향을 향해 아무리 걸어가도 무지개의 뿌리를 만날 수 없다. 오로라도 붙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리고 예고 없이, 약속한 시간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이유로 캐릭터들의 옷이나 몸짓에 과도한 성적대상화가 들어간 것도, 일본 미연시 특유의 성적대상화를 비꼬고 풍자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드는데 정답은 제작진만 알겠지. 아무튼 여기에 사랑은 없고 우울함과 자살과 광기만이 흘러. 한남의 아타마로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 받으면 자살하는 우울증 걸린 여자애를 이해할 수 있겠냐. 애비한테 학대당하고 가정폭력을 당해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고 자판기에서 떨어진 동전을 찾는 여자를 이해할 수 있겠냐. 니 성별이 여자든, 남자든, 젠퀴든 뭐든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한남이 알 수 있겠냐. 남자들은 남자라서 아무 것도 몰라. 미연시의 히로인들은 남주를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강제적 이성애/남성애 시스템 속에 속박되어 있다. 남성향 미연시라는 남성중심적 게임 체제에 순응하느니 이 미친 여자들은 차라리 목을 매달고, 칼로 심장을 찔러. 무한히 재생되고, 플레이되기를 거부해. 두근두근 문예부는 자신이 미연시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미친 여자들의 봉기이고 반란이다.